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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에서/이런저런 생각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 영화 <1987> 감상

by [헤이든] 2018. 1. 15.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는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아놓고." 라고 언젠가 전두환 前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1980년의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던 아버지도 내게 물으셨습니다. "저 시대에 정말로 그랬을까 싶지? 그저 영화 같지?" 물론 그 시절 그 현장에서 온몸으로 겪어냈던 이들에 비해 실감은 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저도 '80년의 광주나 '87년의 서울에 공감합니다. 영화 <1987> 속에서 한열이 연희에게 말하듯이, 마음이 아픕니다.

 꼭 직접 경험해야만 아픔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으니까. 영화는 시각과 청각을 직접 자극해 관객들로 하여금 동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나 선과 악의 구도가 명확할 때, 공감의 과정은 더 쉽게 일어납니다. 남영동이 상징하는 악과 그 나머지 인물들의 선. 관객은 종철과 한열의 희생에 슬퍼하고, 연희와 함께 광장에서 벅차오르는 감격을 느낍니다. 최 검사가 구치소에서 남영동 사람들과 조우할 때는 통쾌하기도 합니다.

 영화 <1987>은 "모두가 뜨거웠던 그 해"의 실화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인물 중 상당수가 실존인물이며, 여전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으로 묘사된 인물들, 그리고 그들에 동조하는 이들은 이 영화가 유쾌할 리 없습니다. 실제와 다르게 선으로 포장된 인물이 있다며, 불쾌함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건 아닌지, 연출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따져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무책임한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다른 생각거리에 대해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 동아일보 사회부장은 "경찰이 고문해서 대학생이 죽었는데, 보도지침이 대수야?"라며 칠판을 벅벅 지웠습니다. 그냥 흘려 들을 수도 있었겠지만, 콕 집어 대학생이 희생되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군사정권 시기에 대학생은 치열하게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하고, 또 젊은 혈기로 앞장서서 여론을 형성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안기부장은 박 처장에게 "대학가 열리기 전에, 보따리를 싸자"고 했습니다. 대학진학률도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시기였기에, 일반 시민들로부터 대학생이 받는 신망도 두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주화의 중심에 섰던 386이라는 말 자체가, 80년대 학번을 뜻하니까요.

 2010년대의 대학생들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생존'인 것 같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스펙 경쟁을 벌입니다. 한 때는 "토익 책을 덮고 짱돌을 들라"고 하던 이들의 목소리도 사그라든 듯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냉혹한 현실만 아니라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이 최고로 여기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몸을 던지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가치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이어서 정의에 대한 독점과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 처장은 '인민민주주의 혁명'의 완장을 찬 업둥이 형의 손에 가족을 모두 잃었던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입니다. 고문을 동반한 대공수사가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한국이 적화 통일 됐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문치사 피의자인 조 반장에게 "너래 애국자야. 고개 빳빳이 들고 살라우."라고 말합니다. 박 처장은 정말 악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잘못된 신념과 정의를 따르는 확신범으로 박 처장을 바라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악인으로 치부해버리면 아무런 통찰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악에 대해서 법의 징벌이 내려졌고, 그로써 끝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영동의 대척점에 서 있던 이들을 절대적인 선으로 규정짓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 역시 신념에 따라 당시에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투쟁했을 뿐입니다. '87년의 서울에서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외쳤던 이들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변절했다"라고 하는 데 조심을 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통령 직선제라는 교집합이 있었지만, 그 바깥에 각자가 생각했던 정의가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만이 옳다고 믿은 채, 정의를 독점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각자 추구하는 정의가 과연 보편적인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지 끊임 없이 의심해야겠습니다. 여러 정의들이 국회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논리로 경쟁하는 사회. 논쟁의 결과 합리적인 대안이 채택되어 더 큰 공공선이 실현되는 사회. 1987년 보다 더 많이 민주화된 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다짐입니다. 마음 아플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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