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학년도 봄학기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북한의 정치와 사회> 리포트로 제출한 글입니다.
Ⅰ. 굶주리는 세계의 절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로 인한 글로벌 금융 위기, 유럽 남부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연이어 터지면서 현재 세계 경기는 상당한 침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경험한 적 없었던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넘쳐서 잉여 농산물과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걱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있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셰일 가스 등 대체 에너지의 채산성이 크게 개선되어 에너지 소비 억제의 목소리도 많이 작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계 절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세계의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립니다. 또한 기초 인프라 부족으로 만성적인 에너지 난으로 산업 발전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좀처럼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Ⅱ. 빈곤의 원인
『원조의 덫』의 두 저자, 글렌 허버드(Glenn Hubbard)와 윌리엄 더건(William Duggan)은 굶주리는 나라들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을 진단했습니다. 우선 공공 부문이 민간의 자유로운 시장 경제 활동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버드와 더건은 대체로 빈곤국들이 세계은행(IBRD)에서 발표하는 기업 환경 평가(Doing Business Report)에서 낮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빈곤국에서는 정부의 인·허가 절차가 매우 복잡해서, 민간 기업들이 신규 창업을 하거나 제품을 수출·입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과다하게 긴 행정 처리 기간은 기업이 시장 상황에 적시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전후 한국의 경제와 마찬가지로 국내 구매력의 부재와 자본재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복잡한 수출·입 절차는 그야말로 스스로 자국 경제를 갉아 먹는 행위입니다. 빈곤에서 탈출한 국가의 사례를 들여다 보면,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제품 판매를 위해 소비 여력이 떨어지는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합니다. 그리고 국내 기술력의 빈곤 역시 해외로부터 자본재를 수입함으로써 만회하여, 해외 경제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복잡한 행정 절차에 덧붙여 높은 세율 역시 민간 부문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세계화 바람과 함께 다국적 기업이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법인 세율은 하향 추세로 동조화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국 기업의 해외 유출을 막고, 해외 기업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 자본 형성이 미미한 빈곤국에서는 해외 자본 유치가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세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건대, 불안정한 정치적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한 인기 영합적 정책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허버드와 윌리엄이 『원조의 덫』에서 주목한 빈곤의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선진국의 원조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선진국의 원조는 오히려 해당 국가의 산업 발전을 저해하여,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내재력의 신장을 억제합니다. 예를 들어 마을에 우물을 만들어 주는 원조 프로그램은 해당 국가에서 우물을 건설하는 기업의 경제 활동을 차단한다는 것입니다. 허버드와 윌리엄은 부유국의 원조 프로그램으로 인해 민간 산업 부문의 발전이 억눌리는 현상에 대해, 유니레버의 탄자니아 원조 프로그램에 착안하여 알란블랙키아 문제(Allanblackia problem)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Ⅲ. 선진국은 왜 빈곤국을 도와야 하나
허버드와 더건은 『원조의 덫』에서 민간 부문의 NGO가 수행하는 빈민 구호 활동을 비판합니다. 대신에 냉전 시기 마셜 플랜에 활용되었던 ECA(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라는 국제 기구를 새롭게 부활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빈곤국 원조의 공여자로서, 민간 NGO 보다는 국가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민간 NGO는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알란블랙키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반면에 국가는 빈곤국의 산업 부흥을 위한 대규모 원조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버드와 더건은 이러한 국가 차원의 공여에 대해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세계화 흐름에도 불구하고 국경선은 여전히 굳건하며, 각 국 정부는 지구촌 차원의 공익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당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빈곤국에 대한 원조는 자국의 부를 해외로 유출, 그것도 무상으로 이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의 원조를 주장하는 것은 빈곤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서, 빈곤국 구제에 대한 선진국의 책무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두 저자는 선진국의 빈곤국 구제라는 책무에 대한 논의를 저서에서 생략했지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 세계화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선진국들은 자국 민간 기업과 합을 맞추어, 개발 도상국들을 상대로 세계 시장 경제에 편입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의 기업이 선진국의 기업에 비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움은 너무도 자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선진국의 시장 개방 요구는 주변부 국가에 대한 중심부 국가의 착취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에 덧붙여 선진국이 내세우는 세계화 담론은 제국주의의 새로운 변형일 뿐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계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빈곤국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조를 제공한다면, 선진국은 비판 일변도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시장 개방과 세계화로 인해 선진국이 얻는 이익이 원조 수혜로 인해 빈곤국이 얻게 될 혜택보다 더 클 수 있겠지만, 도덕적 비난을 방어할 수 있는 방패가 생기는 셈입니다.
두 번째로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외부 불경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차원에서, 선진국은 빈곤국 구제에 나설 책임이 있습니다. 선진국의 공업화 과정에서 불가피 하게 나타난 환경 오염으로 인해 나타난 오존층 파괴, 극지방 빙하의 용융(溶融), 해수면의 상승 등은 비단 선진국에게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지구촌 주민인 신흥 개발 도상국, 빈곤국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외부 불경제를 내부화 하기 위해 탄소 배출권이라는 상품을 개발해냈지만, 이마저도 빈곤국을 오히려 해치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탄소 배출권은 거래를 통해서도 매입할 수 있지만, 조림사업을 통해서도 탄소 배출권을 획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림사업이 선진국이 아닌 빈곤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선진국은 지구촌 차원에서의 비민주적 성장을 지속하고 빈곤국은 가난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됩니다. 이에 반해 선진국이 국가 차원에서 빈곤국에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외부 불경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구매력 신장을 통한 빈곤국 시장의 개척입니다. 이는 빈곤국에 대한 책무라기 보다 자국 민간 기업이 불확실한 시장을 개척 하는 데 따르는 위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86% 시장에 도전하라』라는 책이 출간될 정도로, 세계 경제 일각에서는 극빈 계층의 잠재적 구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빈곤국에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민간 부문을 부흥시키면, 빈곤국 국민의 구매력이 향상되게 됩니다. 구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선진국 제품을 소비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빈곤국에 대한 원조가 선진국 민간 기업의 수익으로도 연결되는 선순환 고리를 그려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Ⅳ. 새로운 ECA의 메커니즘과 한계
허버드와 더건이 제안하는 새로운 ECA의 메커니즘은 냉전 시기 마셜 플랜 수행을 위해 설립되었던 구(舊) ECA와 꼭 닮아 있습니다. 선진국은 ECA에 기금을 출연하고, 빈곤국 민간 부문에 대해 차관을 제공합니다. 차관을 제공 받은 빈곤국의 기업은 ECA에 대해 상환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대신에 차관에 대한 원리금을 자국(빈곤국) 정부에 상환합니다. 민간 기업으로부터 ECA를 대신해 차관의 원리금을 수령한 빈곤국 정부는, 그 재원으로 공공 인프라 건설에 투자합니다. 즉 ECA는 차관을 유상으로 제하여 빈곤국 기업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피원조 기업이 원리금은 빈곤국 정부에 상환하도록 함으로써, 선진국이 빈곤국 정부에도 발전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일석이조의 원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메커니즘입니다.
일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산업의 발달이 중요하지만, 공공 인프라의 건설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역시 제 1 공화국 시절부터 고안된 경제 개발 계획은 시멘트 공장, 판유리 공장 등 기초 인프라 건설과 중간재 생산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부 시기 눈부신 경제 성장은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허버드와 더건이 제안하는 새로운 ECA가 현행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와 구별되는 지점은 국가 경제 성장의 쌍두마차인 민간 산업과 공공 인프라 건설을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허버드와 더건의 제안은 몇 가지 지점에서 한계점에 봉착했음을 저서 『원조의 덫』에서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한계점은 빈곤국 현지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 문제입니다. 뇌물의 공여와 수수는 반시장적인 행위로, 빈곤국을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도에 올려 줄 자유 시장 경제의 안착을 방해합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현지 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하지 않는다면 뇌물을 공여한 경쟁 기업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제품이 시장에 남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버드와 더건은 현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설령 경쟁 기업은 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하고 있어, ECA의 차관을 받은 기업이 오히려 시장에서 뒤쳐진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두 저자는 경쟁 기업의 뇌물 공여 문제에 대해 “좋은 해답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ECA 제안에서 포착된 두 번째 문제점은 ECA로부터의 차관을 거절하는 국가는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ECA의 빈곤 구제 프로그램은 빈곤국의 부패한 지도자가 자유 시장 경제의 도입을 반대할 경우, 민간 산업 발전 차관을 제공하지 않고 인도주의적인 원조만 시행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ECA에 협조적인 빈곤국에 더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는 알란블랙키아 문제의 해결을 도울 의지를 갖지 않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Ⅴ. 새로운 ECA의 사각지대 – 북한
북한은 경제 성장에 유리한 온대 기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제 상의 하자로 인해 세계적으로도 최빈곤국으로 분류됩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북한의 연간 1인당 GNI(Gross National Income, 국민총소득)는 고작 133만에 불과합니다. 한국의 2011년 1인당 GDI가 2,470만 원(원-달러 환율 1,100원으로 환산)임을 고려하면, 같은 한반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2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그 어느 국가보다도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선진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북한은 허버드와 더건이 제안하는 새로운 ECA 메커니즘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한은 생산 없이 유통과 소비만 있는 경제로 불리웁니다. 즉 ECA의 원조 대상이 되어야 할 민간 산업 부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ECA는 빈곤국 민간 기업을 유상 원조하고, 그 원리금을 상환 받은 빈곤국 정부는 공공 인프라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의 첫째 고리부터 북한에서의 적용은 불가능합니다. 백 번 양보해서 ECA가 민간 기업이 아닌 비공식 유통 부문의 시장 상인을 지원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ECA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시장 상인은 그 원리금을 북한 지도부에 상환하고, 북한 지도부는 공공 인프라 건설에 지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법 상행위를 하고 있는 상인이 지도부에 ECA로부터의 지원금에 대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불법적 암시장인 장마당에서 상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장마당의 뒤를 봐주고 있는 지역 간부에게 뇌물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는 새로운 ECA의 뇌물 공여 금지 원칙에 반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뇌물을 공여하지 않는다면, 시장 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장에 진입하는 것 조차 불가능합니다. 허버드와 더건의 말처럼 “좋은 해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통 상인은 민간의 생산자보다 부가 가치 창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ECA가 상인을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북한 지도부가 시장 경제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는 방법뿐입니다. 새로운 ECA는 자유 시장 경제를 수용하는 국가만을 원조의 대상으로 합니다. 또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민간 산업 부문이 자유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는 형성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개성공단 폐쇄 사태에서 볼 수 있었듯이, 북한은 체제를 위협하는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Ⅵ. 사각지대 북한이 주는 시사점
북한과 관련된 논의로 미루어 보아, 허버드와 더건이 제안하는 새로운 ECA의 빈민 구제 프로그램은 매우 특수한 상황 속에서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선 전제 조건으로 독재자가 통치하고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공식적으로 자유 시장 경제를 채택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후진국의 특성인 관료의 부패를 경제 성장에 앞서 해결 할 수는 없을지라도, 관료의 부패 그 자체가 민간 기업의 시장 진입을 차단해서는 안 됩니다. 즉 현지 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하지 않더라도, 기업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차관 수혜 기업의 경제 발전 기여 의지, 빈곤국 정부의 공공 인프라 투자 의지 역시 새로운 ECA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한 조건입니다. 하지만 굶주리는 세계의 절반에서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국가는 매우 적은 수일 것입니다.
Ⅶ. 보편적 원조 모델을 위하여
결국 빈곤국의 독재자들이 자유 시장 경제 도입을 꺼리는 이유는 체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야욕 때문에 국가 경제의 빈곤, 인민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민의 굶주림 역시 체제 불안 요인 중 하나이고, 빈곤국의 독재자 역시 인지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독재 빈곤국인 북한은 지난 3월 말,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 건설을 위한 정책의 선택지에 자유 시장 경제의 도입은 없을 것임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빈곤국을 원조하는 데 있어서,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의 이식이 필수적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고속 성장을 한 한국의 사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한국은 미 군정 시기에 미국으로부터 시장 경제를 이식 받아, 공식적으로 그리고 외형적으로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정부 수립 이후 고수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의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시기의 경제 체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유 시장 경제라 할 수 없었습니다. 중앙 정부의 계획에 의해, 그리고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자본이 배분되었습니다. 효율적인 성장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특정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 졌습니다. 수출에 유리한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고정 환율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식량 가격을 의도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에서 묶어 둠으로써 농민을 희생시키고, 도시 노동자에게 보조금을 주었습니다. 가정용 전기 사용료 보다 생산용 전기 사용료를 저렴하게 함으로써, 일반 국민을 희생시키고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주었습니다.
위와 같이 온통 반 시장적인 규제와 정부의 개입이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연 평균 7~8% 가량 성장했고, 세계 12위 규모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 섰습니다. 우리는 차관의 조건으로 빈곤국에 요구하는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선진국의 기준에서 규정된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빈곤국 원조의 목적이 연민이라든가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이 아니라, 저소득층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이윤적 동기는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앞서 논의했던 선진국의 빈곤국에 대한 책무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외부 불경제에 대한 비용의 지불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책무이지만,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서 선진국 정부 차원에서 빈곤국을 도와야 하는 당위성의 합리적인 근거입니다. 시장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편익을 누린 데 대한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비용을 수령하는 경제 주체가 누구인가는 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선진국은 원조를 받는 빈곤국 정부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든,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든 경제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 오염 등의 외부 불경제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다만 지불된 비용이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선진국이 빈곤국의 경제 성장을 위한 공공 인프라 건설에 직접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는 국민의 정부 시기에 채택한 대북 햇볕정책의 정경 분리 원칙을 세계 차원으로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한국의 대북 정책에 오롯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북한과 같이 국제 사회를 상대로 위협을 일삼는 불량 국가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선진국이 지불한 비용이자 원조를 무력 도발 행위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민들에게는 도의적으로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불량 국가의 체제 불안 요인을 유지 및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자유 시장 경제 도입이라는 조건 없이 정경 분리 원칙에 입각하여, 선진국 정부가 책무적으로 빈곤국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랍니다.
■ 참고문헌
- Glenn Hubbard · William Duggan, 조혜연 역, 박현준 감수, 『원조의 덫』, 비즈니스맵,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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