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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의 인생론 - 『자기 앞의 생』 감상

[헤이든] 2018. 12. 28. 00:46

 열 살 또는 열네 살의 모모는 생(生)을 사색하는 아이입니다. 반면 훨씬 많은 날을 살아오면서도, 생 그 자체에 대해 모모만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모는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각주:1] 하지만 불행이 생을 사색하게 한다는 모모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색한다는 것은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고,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관심이 필요합니다. 모모는 불우한 환경에 놓여진 자신의 생뿐만 아니라, 주변 소수자의 생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입니다. 모모의 사색에 귀를 기울이는 건 비단 연민 때문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모에게 감동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모모는 우리 모두가 선택 받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샤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모모를 낳았습니다.[각주:2] 선택 받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생은 가치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생을 존중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종, 종교, 성적지향 등이 사회 성원 다수와 다르다고 혐오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를 모모는 “콜레라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콜레가 된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콜레라가 된 것이니까”라고 설명합니다. 병은 “그저 병일 뿐이고 병에는 책임이 없”듯이, 생은 그저 생일 뿐이고 생을 부여 받은 이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각주:3]


 그런데 모모는 특별히 생이 아름답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언뜻 “녀석은 내편이 아니니까”라며 행복하기를 지레 포기한 듯한 모습도 보입니다.[각주:4] 하지만 모모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모모는 행복에 익숙해지는 일을 경계합니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각주:5] 우리의 생은 그렇게 행복한 것이 아닌데, 행복에 집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시련과 노화 따위에서 오는 고통, 불행이 없는 생은 “무엇 하나 진짜가 없는 이 서커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각주:6] 때문에 모모의 말마따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 “생을 미화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불행한 생도 생일뿐, 행복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스스로를 갉아 먹습니다.[각주:7]


 그렇다고 불행한 생이 강요되어서도 안 됩니다. 모모와 그 주변에서는 제도에 의해 불행을 강요 받는 소수자의 생이 목격됩니다. 양육권과 친권을 박탈당한 성노동자, 입양권을 가질 수 없는 트랜스젠더. 그리고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과 다르지 않은 존엄사 금지 때문에 고행을 겪는 환자.[각주:8] 이들은 부모로서의 필요, 주체로서의 필요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앞의 생”에 불행을 강요 받습니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필요”로 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모모의 해법이자, 생에 대한 선언입니다.[각주:9] 모모의 인생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불행한 생을 사는 이에게 마냥 책임을 묻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택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면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 때 생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자기 앞의 생”에 불행을 강요 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행복을 채워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1. Émile Ajar, 용경식 역, Manuele Fior 그림,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18 :p.34 [본문으로]
  2. 같은 책 : p.283 [본문으로]
  3. 같은 책 : p.186 [본문으로]
  4. 같은 책 : p.120 [본문으로]
  5. 같은 책 : p.120 [본문으로]
  6. 같은 책 : p.127 [본문으로]
  7. 같은 책 : p.140 [본문으로]
  8. 같은 책 : p.328 [본문으로]
  9. 같은 책 : p.343 [본문으로]